Hits
ETC 2022. 11. 29. 오전 12:19:00

창업 & 첫 서비스 개발 회고

"초보 개발자 무지성 창업 1년 돌아보기"
startupretrospect

아직 2022년이 끝나기엔 한달여 정도가 남았지만 팀을 나오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시점에 애매하게 한달여 정도가 남아서 1년이라 치고 클리퍼스와 함께한 2022년을 돌아봤습니다. 창업에서 1년이란 시간은 참 짧은시간 같은데요. 그 짧은 기간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Prologue.

코딩?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처음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작년 이맘때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건축학과에 다니면서 공부로도, 사람으로도 많이 지치고, 관심사가 이미 코딩으로 쏠려버려서 1학기 중반, 설계 중간마감 전날 휴학신청을 하고 군산에 있을때입니다. 막상 본가에 내려가니 코딩은 처음에만 잠깐. 이후로는 손도 안대고 뜬금없이 커피를 배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에서 일하면서 집에와서는 게임만하며 몇 달을 썼네요. 허송세월 다 보내고 슬슬 다시 코딩을 해볼까 했는데, html/css만 알고있고 파이썬도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전과는 늦었고, 부모님은 편입을 권유하셨는데 학교가 지긋지긋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학원이나 부트캠프를 가자니, 여러 글이나 유튜브에서 “부트캠프 졸업하면 다 똑같은 포트폴리오 가져와서 어느 부트캠프 나왔는지 다 안다”라는 부정적인 의견들에 영향을 받기도 했고, “가르쳐주는거 앉아서 받아먹는거 학교랑 똑같은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과제만 던져준다는 42서울이 잘 맞을거같아 들어가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라피신 신청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사이에 뭐라도 해봐야겠더라구요.

갑분창 - 갑자기 분위기 창업

별것도 없는 재료들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뭘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사람들이 쓸만한 뭔가를 만들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걸 만들려면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보고 일단 만들어보면서 필요한걸 배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디어는 로컬추천기반 여행어플이었습니다. 군산에 있다보니 친구들이 많이 놀러와서 집근처 반경 1km정도밖에 모르는 집돌이가 열심히 찾아서 가이드를 해줬는데, 친구들이 만족해해서 기분이 좋더라구요. 이런식으로 지역주민들이 추천해주는 여행지나 맛집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 욕심이 끝이없다고, 이걸로 사업까지 해볼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는거 html/css, 가물가물한 파이썬밖에 없는데 말이죠. 아, 이 무렵에 자바스크립트도 배우긴 했네요.

해보자, 창업

어플에 어떤기능들을 넣을지, 노래는 어떻게 넣을지, 비즈니스모델은 어떻게 만들지 등등을 구상하는데 이 시기에 과후배이자 지금 클리퍼스 대표 A가 언하이드라는 이름의 아이템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던때였습니다. 매 학기 설계를 해내면 교수님께 한번 평가받고 버려지는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예술 쪽으로도 확장시켜 이런 작품들이 사람들한테 한번이라도 더 보여질 기회를 주고싶다는 아이디어였는데요. 한번씩 서울 자취방에 올라와있을때마다 제가 많이 들어주고 상담도 해줬습니다. 거의 날것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구체화시키는데 도움도 많이 주고, 저도 어플을 만들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차라리 웹사이트나 어플같은걸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었습니다. 그러길 몇 번, 이 친구가 개발 공부하는 자기 친구랑 둘이 직접 만들어보겠다네요. 평소에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제가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크게 가망이 없어보여서 많이 고민하다가 저도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A가 준비하고 있었던 사업이기에 대표는 A가 하는걸로, 2022년 1월에 신정을 쇠고 바로 합류하기로 하고,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아이디어의 구체화, 파트 분배 등 여러이야기들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A의 친구분이 부담을 느끼고 나가셨습니다. 본인에게는 가벼운 토이프로젝트 정도였는데 저희가 사업에 진심인게 부담이셨던 것 같습니다.

시작

무자본, 무지, 무경험의 3無

2022년 1월 초, 한참 추울 무렵에 방학 중 빈 설계실에 컴퓨터를 놓고 단 둘이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돈도 없고, CS는 물론이고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예술이라는 도메인에 대한 지식도 없는 지금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패기만으로 시작했습니다. 한살이라도 어릴때 실패해보자, 날 뽑아줄 회사가 없으니 내가 회사를 만들어버리자, 안되면 포트폴리오라도 남겠지 등등 돌이켜보면 정말 패기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A는 코딩의 ‘코’를 넘어 ‘ㅋ’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서 급한대로 html/css 기초와 구글링하는법, 깃허브 사용법 정도만 알려주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건 거기서 js(DOM 핸들링) 조금 할줄안다는 것 밖에 더 없었기 때문에 제가 아는건 거의 다 알려줬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메인화면에서 갤러리같은 오프라인의 경험을 연출하겠다며 수평스크롤을 구현하고 둘이 박수치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보면 참… 귀여웠네요. 둘이서 기획, 디자인, 개발을 하며 낑낑 대다가 한번은 A가 짜고있는 코드를 봤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10개가 넘는 이미지태그에 일일이 하드코딩으로 이미지를 우겨넣고 있더군요. html/css밖에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혹은 10개는 할만하지 않나 싶을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했냐고 물으니 “그냥”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아, 이 친구는 100개가 들어와도 한땀한땀 찍어내겠다’라는 불안감이 들어 제가 개발을 맡고 A가 디자인을 하는걸로 바꿨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팀이 커진다

이후로는 저 혼자 1인개발체제로 들어갔고, A와 같은 학번, 저에게는 과후배인 B가 디자이너로 합류했습니다. 로고랑 아이콘좀 만들어달라고 불러다가는 팀에 합류시켜버린, 거의 납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는 PD를 섭외했는데, 역시 같은 과 출신에 영상관련학과로 전과한 후배였습니다. 학연을 최대한으로 동원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PD냐, 싶으실 수 있는데, 언하이드는 원래 인스타에 작품을 소개해주는걸로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일일이 작가님들께 컨택해서 작품과 설명을 받아 언하이드 계정에 올려드리는, 말하자면 컨텐츠 사업이었는데 이걸 확장시키려니 저희가 일일이 올리는것보다는 직접 올릴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확장 기반을 다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다들 꿈만 크고 하고싶은게 많아서 일을 벌리다보니 유튜브까지 손을 대게 됐습니다. 이맘때쯤 A에게 팀이 우리가 감당 가능한 범위 이상으로 커지는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내비쳤는데 이후로도 학연, 지연을 총 동원해 기획/디자이너, 큐레이터, 백엔드 개발자 총 3명을 더 영입했습니다.

개발 정체, 폐관 수련

html, css, js로 개발을 하다가, 제가 알고있던 방식대로 페이지마다 똑같은 코드를 복붙해가며 만들려니 이게 맞는건가 싶고, 프론트엔드라고 부르는 이 화면 개발을 다른사람들은 어떻게하나 찾아봤습니다. 리액트에 대한 얘기가 많길래 찾아봤더니 배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어 리액트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액트를 공부하며 조금씩 코드를 리액트로 옮기다보니 어느새 3월, 학기가 시작하는 봄이 왔습니다. 이 말은 곧, 사무실로 쓰던 설계실을 빼줘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A는 학업을 병행해야했고, 사무실을 구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학기 중엔 각자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정말 좋지 못해 지금도 재택근무에는 회의적입니다. 설계실에서 밤늦게까지 하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갈때면 집에서 일하면 아이디어가 나오면 바로바로 작업하면 돼서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재택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깨져버렸습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작업환경이었습니다. 저는 더블모니터를 쓰는데 제 자취방 책상이 너무 좁고 양쪽이 비어있는게 아니라 책장과 옷장으로 막혀있어 정말 모니더를 구겨넣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규칙이나 규제, 재택근무를 위한 프로세스가 아무것도 갖춰져있지 않아 금방 동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책상앞에 앉아도 거의 딴짓을 하는데 시간을 다 쓰고 실력도 거의 늘지 않는 2개월을 보내다가, 마지막 1개월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공장처럼 빠른 속도로 코드를 찍어냈습니다. 근데 디자인 쪽도 상황은 매한가지라 작업속도가 안나오고, 저는 저대로 탄력은 받았는데 개발을 할 수가 없어 디자이너만 쪼아대다보니, 서로 스트레스가 만만찮았을텝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3개월이 가장 아쉽고 허무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첫번째 위기가 찾아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중반

예비창업패키지 합격

재택근무중에, 저는 이때 데스크탑으로 일을 해서 A와 B는 이따금씩 오프라인으로 만나 회의, 작업을 할 때 저는 온라인 회의만 참여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회사의 방향이 제가 생각했던 비전이나 가치와 점점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A가 이 즈음에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을 준비중이었는데, 안되겠다 싶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회사의 방향이 내가 생각했던것과 많이 달라져 예창패의 결과와는 별개로 팀을 나갈수도 있다. 단, 나도 뭔가 하나는 얻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완성시키고 나가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다들 동의해서 일단은 예창패와 프로젝트 개발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창패는 합격이었습니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비전과 가치가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함이 들어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첫 사무실

예창패를 합격하고, 숭실대 Pre-Startup 지원사업에도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에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사무실을 구하고 있었는데, 지원사업에 합격하면 학교 내에 창업동아리실 명목으로 사무실을 무상 임대해준다는게 컸습니다. 다행히도 무난하게 합격했던 것 같습니다. 순위대로 사무실을 고를 기회를 줬는데, 제 강력한 주장과 앞선 순번들이 해당 사무실을 선택하지 않았던 운 덕분에 저희는 정남향의 비교적 넓은 방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클리퍼스의 첫 사무실이 생겼고, 2022년 11월, 아직까지 클리퍼스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고 확실히 집중력이나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공간의 명확한 목적탓인지, 재택보다 좋은 환경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일할때보다 일에 몰입이 잘되는건 꽤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솔로개발 탈출

백엔드 개발자 C를 처음 만난건 재택근무를 할 때였습니다. A의 지인이었고, 평소 행실이나 태도를 굉장히 좋게봤다면서 요즘 개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얘기해보고 괜찮으면 같이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줘서 줌으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C는 당시에 지방에서 국비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2~3달 정도 다니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독학으로 뚝딱거리며 배워와서 역량을 어떻게 알아봐야할지도 몰랐고, C도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단계여서 구글링으로 찾아낸 이론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을거란 기대도 별로 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개발자에 적합한 성향을 갖고 있고, 이런 성향을 기반으로 성장가능성도 꽤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질문 몇가지를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서 정확히 어떤 질문들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요. 거의 인성면접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비학원을 수료하고 합류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C가 합류하겠다는 확답을 받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합류는 불확실하지만 혼자서만 개발하려니 할일이 많기도 하고, 언젠가는 해야할 작업이지 않나 싶어 프론트와 백을 분리해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또 새로 합류하는 개발자에게 백엔드 구축부터 다 맡겨버리자니 제 성장으로보나 관리측면에서 보나 좋지 않을것 같다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가능한 C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우선은 Nest.js를 사용하려 했습니다. 제가 익숙한 javascript인데다가 spring과 유사한 구조라고 들어서 양측에 적당한 타협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단 제가 node.js로 서버를 구축해본건 Hello World를 찍어본 수준이었고, Nest.js 공식문서는 그냥 Getting Started 수준에 깊이 들어가려면 node.js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어떻게든 하려면 했겠지만 자료를 찾아도 잘 나오지 않아서 저 뿐만 아니라 C가 적응하기에도 많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제가 javaspring을 배우는걸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구글을 교재 삼아, 스택오버플로우를 사수 삼아 삽질을 하다보니 공부에는 나름 노하우도 생겼고, 저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팀원을 제대로 온보딩 시킬 자신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C는 좋아했습니다. 거의 얼마지나지 않아 합류확정 의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C가 합류할 때까지 1~2달 정도 제가 spring을 공부해 프로젝트를 세팅하고 원래 만들어져있던 기능을 spring으로 옮겼습니다.

출시?

창업해보니 가장 힘들었던게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저를 비롯한 팀원들이 IT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은 돈 문제를 많이 꼽으시겠지만 다들 학생이고, 초기 멤버로 설득해 데려와서 무보수로 일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건비도 들지 않았고, 서비스 개발/운영 비용등은 제가 최대한 아낄 수 있는대로 아껴서 최소한의 지출만 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창패의 지원금은 운용에 제약이 많았는데, 운이 좋게도 적절하게 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막 1년이 된 스타트업에서, 이제 막 MVP모델이 나온 상황에 빚이 없는 한 심각한 수준의 자금운용문제는 드물지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저는 어렸을때부터 컴퓨터와 가깝게 지내다보니 그나마 컴퓨터에 대한 이해라던가 웹이나 앱이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지만, 팀원들은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서비스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실무 경험도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일해야하는지가 참 난감하고 여러 시행착오들을 거쳤습니다. 스타트업, 말만 들어봤지 어떻게 일하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까지 아무것도 몰라서 개발하면서 틈틈이 유명한 스타트업부터 구글에서 나오는건 최대한 찾아봐야 했습니다. 당연히 개발시간 역시 계속해서 늘어났는데,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저도 명확하게 어느부분이 문제인지를 모르겠으니까요. A는 빨리 MVP모델이 나와서 공개하기를 원했고, 저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선택들에서 속도에 보다 높은 점수를 줘야만 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좀 남네요. 그러다가 언하이드의 이름으로 첫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참여 작가님들의 작품을 서비스에 올리고 QR을 만들어 작품 옆에 붙일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미완성인 서비스를 후다닥 배포할 수 있게만 만들고 테스트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배포를 했습니다. 얼떨결에 출시를 해버린거죠.

에러와의 싸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서비스에는 금새 에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작품 업로드 기능에서부터 에러가 발생했는데, 분명 로컬에서도, 배포 이후에도 테스트를 했음에도 작가님들이 업로드를 하자 바로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작가님들이 들어와계시는 전시 준비 단톡방에서는 작품업로드가 안된다는 신고가 계속 들어왔고, 저는 집에서 바로 노트북을 열고 후다닥 대처해봤지만 제 환경에서는 문제가 없어 당장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은 전시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제가 작가님들의 작품과 설명을 받아서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을 해서 올려야했습니다.

이 때 많이 당황스럽고 좀 더 준비된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곤 했습니다. 에러는 계속 나왔는데 이용자들이 제보를 안해주면 에러가 나왔는지 조차 알 수가 없고, 제보를 통해 에러를 받는다고 해도 에러를 추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서버가 aws에 배포돼있었기 때문에 에러가 나면 ec2에 직접 접속해서 로그를 열어봐야 했는데, 이 과정 자체가 너무 불편했고, 문제가 발생한 로그를 찾는것도 거의 불가능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Datadog이나 ELK스택으로 로그 관리하고 모니터링 하고싶었지만, 저희는 당장 에러를 추적하고 빠르게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고, 가장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다가 Sentry를 적용해 에러 발생 시점에 기록을 남기고 에러가 발생하면 슬랙에 알림이 오도록 처리해 이후에는 에러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추적도 쉬워졌습니다.

안녕 클리퍼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언하이드라는 서비스의 초기 기획의도는 자유로운 작품활동과 공유를 통한 기회의 평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지연되는 개발, 불확실한 비즈니스 모델, 흔들리는 방향성 등으로 인해 사업은 날이 갈수록 갈피를 못잡고 흔들려갔습니다. 팀에 대해 처음 의구심이 든건 예창패 지원 전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예창패가 합격을 했고, 저도 뭐가됐든 결과물이 필요한 시점에서 서비스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런 의구심들은 묻어둔 채 지냈습니다. 그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던 건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두 명이었던 디자이너가 학업 때문에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그중 한 친구가 A에게 팀의 방향성을 물어봤었습니다. A의 대답은 저로서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여러번의 대화와 많은 설득을 해봤지만 방향성을 물어봤던 그 친구는 결국 팀을 나갔습니다. 저는 공동창업자로서 A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업이란건 대표의 방향성이 제일 중요한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조차도 다시금 이게 맞는건가 싶은 의심이 계속 들다보니 계속 이 팀에 있어도 되는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 무렵에 조그맣게 진행됐던 언하이드의 첫번째 전시 이후, 대표는 오프라인 전시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화할때면 서비스와의 시너지를 염두에 둔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제 서비스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았고, 저는 개발자로서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창패 산출 기준이 충족되는대로 팀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11월 중순, 문래동에서 진행됐던 전시를 끝으로 클리퍼스와의 동행은 끝이 났습니다.

Epilogue.

좋았던 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덤벼들었을 때는 다들 토이프로젝트로 양산해내는 게시판 수준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는데, 우습게도 저는 그 흔한 투두리스트, 게시판 하나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단 하겠다고는 했고, 막상 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하나를 만들어냈네요. 서비스를 만들면서, 서비스를 위해 공부하다보니, 깃허브에는 의미없는 Hello, World 수준의 레포지토리만 가득하고, 블로그는 부실하며, 자랑스럽게 내놓을 토이프로젝트 하나도 없지만 그만큼 하나의 서비스에 깊이 몰두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만큼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심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서비스의 단순 동작에만 집중하지 않았던 점도 좋았습니다. 서비스를 빨리 만들어내야한다는 압박감에 많이 초조했지만, 앞으로의 여정에 있어 보다 쉬운 유지보수와 협업을 위해 아키텍쳐, 디자인 패턴, OOP, 개발방법론(DDD, TDD 등)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고 적용시켰던 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부족한 실력이지만 팀장으로서, 팀으로 일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들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쉬운 점

이걸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가 참 애매한 것 같습니다. 고친다고 고쳤지만, 아직도 잠재된 버그가 많고, 돌아보면 부족한 점 투성이입니다. 일단 1차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완성이라고 했지만 과연 이걸로 되는걸까 라는 의구심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 언하이드를 통해 꿨던 많은 꿈들 중 극히 일부만이 구현됐습니다. Elastic Search를 이용한 검색기능 구현, Redis를 활용한 알림 시스템, 결제 시스템, 아키텍쳐 고도화라던가, 트래픽 증가에 따른 성능 개선 등 해보고 싶은게 정말 많았는데 여기서 멈췄다는게 제일 아쉽습니다. 또, 개발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공동창업자로서 제가 꿈꾸던 비전들이 제 의지와 별개로 무산됐다는것도 참 아쉽습니다. 서비스의 성장에 따라 시도해보고 싶었던 여러가지 사업 아이템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팀을 떠나게 되며 그런 아이디어들도 제 손을 떠나버려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서비스도 서비스이지만 비개발직군과 어떻게 협업하는지를 좀 더 공부하고 탄탄하게 준비해서 시도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스타트업 블로그를 돌아다니고, 책도 사면서 공부를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 다른 팀원들의 지원이 부족해 저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어떻게하면 팀원 전체가 서비스 개발에 동참하고 진행상황을 공유함으로써 서비스에 대한 애정을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시도들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부분이고, 계속 해보면서 개선을 했어야 하는데 팀을 나오게 되면서 중단됐습니다. 협업 프로세스를 보다 더 고도화했다면 생산성이 훨씬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

사실 언하이드를 만들어냈지만 이걸 경력이라고 쳐야할지, 제가 뭘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래 계획대로 42서울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할 계획이었는데, 얼마전 인프랩 백엔드 개발자 채용에 지원한 이후로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비록 면접에서는 탈락했지만 서류와 과제까지 통과해보니까 마냥 몹쓸 수준은 아닌가보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만도 않은 나이라 무작정 더 공부하는게 부담이기도 해서 아마 비전이 맞는 스타트업을 찾아 취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취업이 안된다면, 42서울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서 여러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네요. 바쁘다고 미뤄뒀던 블로그도 틈틈이 써볼 생각입니다.

Fin.

쓰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흐름대로 쓰다보니 사족이 붙어 길어진 부분도 있고, 길어져서 쳐내다보니 생략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글이 많이 거칠게 써진것 같습니다. 틈틈이 다시 돌아보며 퇴고를 해야겠습니다.